업계기사
영국, 이민 관리 수단으로 디지털 신분증 재추진
의무 신분증, 2차 대전의 망령 떠오르지만… 진짜 쟁점은 ‘자격’ 문제
작성자: Joel R. McConvey
보도일자: 2025년 9월 11일
출처: Biometricupdate.com
영국의 디지털 신분증(Digital ID) 제도는 그동안 순탄치 않은 역사를 거쳐 왔습니다. 2000년대 중반 토니 블레어(Tony Blair) 총리 시절 노동당 정부가 처음 도입을 추진했지만, 강한 비판과 국민 반발에 부딪혀 결국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에 의해 폐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키어 스타머(Kier Starmer) 총리 정부가 이민 관리를 위한 수단으로 디지털 신분증 발급을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영국 내무장관 샤바나 마무드(Shabana Mahmood)는 ‘파이브 아이즈 정상회의(Five Eyes Summit)’에서 디지털 신분증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블레어 정부 당시 ID 카드 도입을 지지했던 인물임을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저의 정치적 이력을 아는 분들이라면, 디지털 신분증이 제가 줄곧 지지해온 사안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CNN과의 인터뷰 중)
내무장관 샤바나 마무드는 디지털 신분증이 정부 통제를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대중의 우려를 진정시키는 데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제도가 이민자들의 영국행을 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습니다. “내무장관으로서 저는, 현재 영국이 전 세계적으로 이동 중인 이들이 선호하는 목적지가 되고 있는 ‘끌림 요인(pull factors)’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반드시 그 부분은 단속(clamp down)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어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디지털 신분증 제도는 불법 취업 단속이나 다른 법률 집행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수행해야 할 보다 광범위한 과제가 있는 셈입니다.”
한 기자가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이 디지털 신분증을 의무적으로 소지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마무드 장관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부의 현재 입장은, 디지털 신분증의 추가 도입 가능성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논의에는 익숙한 지지 세력도 다시 등장했습니다. 바로 토니 블레어 재단(Tony Blair Institute)이 전국 단위 디지털 신분증 제도의 필요성을 다시금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것입니다.
문제는 ‘신원’이 아니라 ‘권한 부여’다: 데이비드 버치
그렇다면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번에는 영국이 디지털 신분증 제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무엇이 잘못됐었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바로 최근 에피소드에서 When Technology Goes Wrong이 디지털 신분증 및 핀테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데이비드 버치(David Birtch)에게 던진 핵심 주제입니다.
버치는 먼저 ‘디지털 신분(Digital Identity)’이라는 용어 자체를 해체하며 설명을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 신분을 매우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합니다. 그저 온라인에서 작동하는 어떤 형태의 신분증을 의미하죠. 하지만 저에게 디지털 신분이란 훨씬 더 구체적인 개념입니다. 바로 ‘온라인 신분과 오프라인 신분 간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버치는 본인의 디지털 ID 개념을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 식별(Identification) – 이 디지털 신원이 실제로 특정한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가?
- 인증(Authentication) – 이 신원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실제로 그 당사자인가?
- 권한 부여(Authorization) – 그렇다면 이제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는가?
버치는 디지털 신분증 논의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식별(identification)’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당신이 누구냐”에 초점을 맞추지만, 실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이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냐(authorization)”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디지털 신분 인프라를 설계할 때 가져야 할 정신적 모델(mental model)은, 단순히 ‘당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디어 논평들을 보면 자주 이런 식으로 접근하죠: ‘나는 영국인으로서 그런 걸 증명할 의무가 없다. 마그나카르타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왜 내가 내 신원을 증명해야 하나?’”
버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매번 증명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당신이 무엇인가(what you are)’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18세 이상인가요? 특정 날짜의 이벤트 티켓을 가지고 있나요? 다시 말해, 당신이 ‘정당한 이용자’인가요? – 이게 진짜 중요한 질문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방식은 권위주의나 국가 통제와 관련된 부정적인 인식을 동반합니다. 반면, ‘무엇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permissions)는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게 모두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개념입니다. 이 점을 특히 젊은 세대에게 강조하기 위해, 데이비드 버치는 부활한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Oasis)’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지금은 2025년입니다. 당신이 오아시스 공연의 가짜 티켓을 살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건 아예 불가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티켓은 암호학적으로 인증된 자격 증명, 즉 ‘이 날짜, 이 좌석, 이 공연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하거든요. 가짜 티켓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버치는 이어 이렇게 제안합니다: “이 논의를 한 단계 더 진전시키기 위한 좋은 방식은, ‘전국민 신분증 제도’ 같은 용어를 그만 쓰고, 대신 ‘전국민 권한 증명(entitlement) 제도’로 말의 틀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짜 하려는 건,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이나 자격을 손쉽게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다수의 제공자가 참여하는 프레임워크 모델의 가능성
디지털 신분증이 정부의 뇌 이식 칩 음모로 이어질까 두려워하는 음모론적 시각에 대해, 데이비드 버치는 쓴소리 같은 현실을 직설적으로 내놓습니다. “솔직히 말해, 당신은 칩을 이식할 만큼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게 그 주장에 대한 현실적인 답이죠.”
처음 영국에서 디지털 ID 제도가 추진됐을 때는 사회적 분위기와 여론이 이를 무산시켰지만, 버치는 기술 자체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지금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암호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들은 이제 실전에서도 충분히 검증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s), 암호 블라인딩(Cryptographic Blinding), 동형 암호(Homomorphic Encryption)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규모 보안과 대규모 프라이버시 보호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이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입니다.”
“신분증(ID)이라는 개념을 전쟁과 나치와 연결 지어 생각하는 오래된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에게 ‘우리가 ID카드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곧 유럽 대륙의 폭정(continental tyranny)을 떠올리게 되는 거죠. 반면, 요즘 세대의 논의는 훨씬 더 실용적입니다. 젊은 세대는 오히려 ‘내가 왜 아직도 PDF를 보내고 있지?’라고 생각하죠.”
이민 문제에 대해서도, 데이비드 버치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디지털 ID 카드가 실제로는 불법 이민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오히려 그것이 정부가 디지털 신분체계 전반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처럼 프레임워크 중심의 접근을 시작한 나라들을 보면 꽤 흥미로운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영국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즉, 정부는 전체적인 신원 시스템의 구조(프레임워크)를 설계하고, 그 위에 실제로 민간 기업들이 이 구조를 채워 넣고 작동시키는 모델인 거죠.”
버치는 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런 형태의 좀 더 풍부한 인프라, 다양한 제공자가 존재하는 모델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지갑 안에 4~5개의 신용카드나 결제카드를 가지고 다니듯이, 여러 개의 디지털 신원을 갖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내가 금융 상담사와 이야기하거나 주식을 매수하거나 보험을 들 때는 내 은행용 ID나 금융 서비스용 ID를 사용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그 ID는 내가 맨체스터 시티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던전 앤 드래곤 게임 모임에 참여할 때 사용하고 싶은 ID는 아닐 겁니다.”
“모든 상황에서 하나의 ID만을 사용하는 것이 곧 ‘나’라는 전제, 그리고 그것이 추적되고 기록될 수 있다는 개념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ID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린 이미 디지털 ID를 폐기했다, 또 폐기할 것이다: 빅 브라더 워치
모두가 디지털 ID 도입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빅이슈(Big Issue)』의 한 기사는, 디지털 ID가 실질적인 이민 문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명분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디지털 신분증 도입 제안은 이 제도가 얼마나 형식적인 퍼포먼스인지 잘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진실은, 이미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영국 내에 존재하고 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스템의 이름은 e비자(eVisa)입니다.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4백만 명 이상이 이 디지털 전용 이민 신분 시스템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EU) 시민 5백만 명 이상이 이 시스템을 이용해 본인의 권리를 증명해 왔습니다.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이민자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직장을 구하고, 집을 임대받는 등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든 반드시 이민 신분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또다시, 자신들의 정치적 이민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처럼 포장된, 비싸고 화려한 새 시스템을 모든 사람들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감시사회 감시단체 ‘빅 브라더 워치(Big Brother Wat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신분증이 의무화된 영국은 결국 ‘체크포인트 브리튼(Checkpoint Britain)’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단체는 보도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지난 총선 이후 집권한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정부는 디지털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정부는 입장을 바꾸려는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영국의 모든 성인을 대규모 감시 인프라에 강제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 인프라는 막대한 양의 민감 정보를 수집하고, 국민들의 일상적인 상호작용 속에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 불법 이민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에서 말이죠.”
이 보고서는 빅 브라더 워치가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YouGov)에 의뢰해 실시한 독립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대다수 국민(63%)이 정부가 디지털 신분증 데이터를 안전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빅 브라더 워치의 임시 국장 레베카 빈센트(Rebecca Vincent)는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디지털 신분증이 불법 이민 문제를 마법처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발상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이 제도는 작은 보트를 타고 해협을 건너는 밀입국을 막을 수 없으며, 비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입국하려는 이들을 억제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대신, 디지털 신분증은 이미 이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약 6천만 명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기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 수많은 영역에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녀는 이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영국 국민은 오랜 세월 동안 강제 신분증 제도를 거부해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를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 우리의 프라이버시 권리가 위협받는 때는 없었습니다.”
